[최용완 칼럼] 현대역사 소용돌이 속에 한민족 (4)

최용완

전명희 기자

작성 2020.09.14 10:05 수정 2020.09.14 10:35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Divisament dou monde)에 그는 1274년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 칸의 여름 궁전이 있는 상도(上都 네이멍구자치구 남부)에 도착했다. 17년 동안 원나라에 머물면서 쿠빌라이 칸의 신하로 일했다.

 

수도인 대도(大都 베이징)를 비롯하여 산시(陝西), 쓰촨(四川), 윈난(雲南), 허베이(河北), 산둥(山東), 장쑤(江蘇), 저장(浙江), 푸젠(福建) 지역들을 방문했다. 1295년 고향 베네치아로 돌아왔다. 동방의 막대한 부유와 풍요의 이야기는 유럽인들의 호기심과 탐험욕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동방견문록은 유럽에서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혔다.

 

중세기 암흑시대에서 유럽인들은 처음으로 지구의 반대편에 동아시아를 알게 되었다. 한반도 민족인 훈족과 몽골이 달려간 비단길은 동아시아 문화와 문명이 유럽으로 흘러 들어가는 길이었다. 태평양 해변 따라 미대륙에 이르는 동아시아의 항해정보는 유럽에 전파되고 콜럼버스나 마젤란은 모두 명나라의 조선술과 지도 제작기술, 천문관측 능력, 항해술을 얻을 수 있었기에 항해에 나설 수 있었다. 15세기까지 유럽의 문명은 동아시아의 문화에 의존해 왔음을 보여준다. 이때부터 동아시아는 세계패권을 유럽에 넘겨주기 시작하였다.

 

16세기에 들며 유럽은 몽골의 화약과 총 대포를 발전시킨 무기와 동아시아의 항해술 영향으로 활 쏘고 창을 던지는 미개지 대륙을 침략하기 시작하였다. 북 남미 대륙, 호주, 시베리아를 점령하고 유럽의 식민지를 만들었다. 오늘의 세계지도를 만들었다.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하고 세계 일차대전과 이차대전을 승리로 이끌며 세계 최강국을 이루었다. 증기기관차와 철길, 자동차, 비행기, 컴퓨터를 발명하며 경제강국이 되었다.

 

한반도의 가야국은 일본건국의 주역이었다. 가야 기마민족설에 가야의 월지국(月支國)에 진() 왕이 지배권을 잃게 되자 무리를 이끌고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진왕은 지금의 북규슈 지역인 쓰쿠시(筑紫)에 도착하고 지금의 나라 지역인 기나이까지 진출하여 일본의 첫 야마토 조정을 세웠다. 후기고분에 속하는 당시의 전방후원 고분형태와 고분부장품 면에서도 기마민족설을 증명하게 된다.

 

이는 규슈 후쿠오카현의 옛 쓰쿠시일대의 석개고분에서도 옛 가야의 석개묘(石蓋墓)에서 출토된 동일한 부장품이 대량으로 나온다. 일본 서기(日本書紀)에 의하면 한반도 남단에 가야국의 덩이쇠는 일본에 철기의 원료 철재로 대량 수출되어 일본의 철기 문화의 바탕이 되었다. 일본은 백제의 영토이며 일본 아스카(飛鳥, 明日香) 문화는 백제 문화이다.

 

수천 년 동안 발달해온 백제 강철문화의 칠지도는 75길이의 철검으로 뛰어난 철의 단조기술과 61자의 금상감을 새겨 넣은 명문이 있다. 음양오행 7가지를 뻗어낸 사슴뿔을 형상화한 듯한 특이한 모양으로 4세기 초의 백제 금속기술의 우수함을 잘 보여준다. 칠지도는 그 당시 국가들의 대표작이며 백제가 일본을 다스린 상징이 되었다. 지금의 일본 천황도 자신이 한민족의 후손이라고 고백하였다.

 

한반도 민족 일본은 한국과 중국이 쇄국 정치하는 동안에 60년을 앞서서 현대화하였고 한국과 중국 만주를 점령하여 식민지화에 성공하였다. 유럽이 아세아의 영토를 빼앗고 식민지를 통제하며 백인 우월주의 사상으로 오늘의 세계지도를 만드는 동안 일본도 한국과 만주에 같은 침략자의 행위를 따라했다. 동남아시아에 확장하려는 의도로 일본은 독일의 이차대전에 가담하였다. 강력한 해군력으로 태평양을 가로질러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하고 미국에 도전하였다. 일본 천황이 주었다는 담배 연기 한 모금 삼키고 나면 가미가제(신풍)라는 이름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비행대는 미국 구축함을 향하여 자폭하고 연기 속에 사라졌다. 세계 2차 대전의 시작은 앞으로 다가올 미국과 동아시아 경쟁시대의 전주곡이었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승리한 미국과 소련은 패전국 독일을 동독과 서독으로 나누었다. 미국과 소련은 일본을 남북으로 나누지 않고 한국을 남북으로 나누어 미국은 일본을 간직하고 보호했다. 한반도의 고통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은 36년 동안 모든 것을 일본에 빼앗기고 해방 후에 하나도 돌려받지 못했다.

 

1950625일 소련탱크와 무기로 무장한 김일성의 북한군은 일요일 새벽에 남한을 공격했다. 남한군과 정부는 속수무책이었다. 낙동강을 경계로 마지막 생존을 방어하고 있는 무렵이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항복을 받아낸 맥아더 장군은 인천 상륙으로 북한군 침략의 허리를 끊었다. 남한군과 유엔군은 북한군을 몰아붙여 함경북도만 남겨 놓았다.

 

   

[최용완]

건축가·시인·수필가

서울공대 건축과 졸업

미네소타 주립대 대학원 졸업

오하이오주 건축회사 대표

전 문교부 문화제 전문위원 역임

미주문협 신인상 수상

자유문학 신인상 수상

에세이포레 신인상 수상

최용완 ywbryanc@gmail.com



전명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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